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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편]헤드헌터 2/3

Kyle 2017.07.11 16:56 조회 수 : 13

봄이 왔다. 길고 긴 바람을 뚫고 훈훈한 바람이 불고 있다. 내 마음은 아직 시베리아의 방랑객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겨우내 함께 했던 진저리나는 냄새가 나는 그 옷들이다.

 

그는 나를 찾아내어 내 이력서를 전달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내가 아직 필요하다고 한다. 사실일까? 이번 주 금요일 3시에 면접이라고 한다. 화장을 곱게 하고 옷을 골라 다시 그들 앞에 서고 싶다. 그리고 내가 했던 일들, 내가 살아 온 길을 얘기하고 싶다. 거짓 미소를 지우며 열심히 하겠다고 나는 이 회사에 정말 잘 맞는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내뱉고 싶다. 네 참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드헌터 통해서 결과 전달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끝까지 내 스커트를 부여잡고 그들에게 내가 살아갈 돈을 벌기 위해 웃음을 짓는다.

탁자에 떨어져 있는 껌 종이에 싸여있는 껌을 꺼내 들었다. 하얀 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들고 입에 넣었다. 그리고 껌을 씹었다. 딱딱한 껌이 뭉치고 점점 끈기가 생겨 하나의 덩어리로 변했다. 그리고 씹던 껌 한쪽을 손으로 잡고 늘려 보았다. 늘어난다. 껌이 늘어난다. 그 찰나, 시간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나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베란다로 향했다. 밖에는 미세먼지로 온 세상이 누런빛으로 희미해 보인다. 내 가슴도 답답하다. 그리고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에 손을 대어 보았다. 가슴은 플라스틱의 겉 표면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베란다 창을 열었다. 그리고 방충망도 열어 젖혔다. 약간 숨이 쉬어 지는 것 같다. 다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난간 위로 힘겹게 올렸다. 다른 한 다리도 뜀뛰기 반동과 부들부들 떨리는 팔의 힘에 의지하여 난간 위로 올렸다. 나의 몸은 잠시 비둘기처럼 난간 위에 지탱되는 듯 하다가 휘청거리고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날기 시작한다. 그리고 낙하하기 시작한다.

 

자유낙하란 처음에는 높이만 있고 속력이 없다가 낙하하기 시작하면 높이는 점점 낮아지고 속력은 증가하여 운동 에너지도 증가한다고 한다. 이윽고 낙하하는 물체는 떨어질수록 속력이 커져 지면에 도달하는 순간 가장 빠른 속력을 갖게 된다고 한다.” 점점 속도가 붙었다.

 

순간이 늘어났다. 나의 모습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하얀 도화지에 채워지는 색깔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들. 아그리파를 그린다. 얼마나 똑같이 짧은 시간에 그리는지가 관건이란다. 미술학원에서 가르쳐 준 공식대로 그림을 그린다. 석고상이 위치한 자리에 상관없이 내 기억속의 공식대로 그림을 그린다. 예술은 말이지 나중에 해. 나중에. 대학 들어가서.

 

다행히 대학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지겹도록 따분한 대학생활이 시작 되었다. 술을 마시고 남자를 사귀고 담배도 선배언니를 따라 피우고, 강소주를 마시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동갑내기와 첫 경험도 했다. 그리고 토익을 준비하고 캐나다의 대학부설 랭귀지스쿨도 일 년 동안 다녀왔다. 그 알량한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이 짓거리들을 했다. 내가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 살아 온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조그만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웃음을 짓고 회사에 매일 먼저 출근해 커피를 내렸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어느 누군가를 위한 삶이다. 컴퓨터로 글자를 타이프하고 자간을 줄이고 CMYK 색으로 인쇄를 위해 색깔을 맞췄다. 그리고 수명이 다한 형광등을 세 번쯤 갈았을 무렵, 다른 중견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이직을 하면 누구나 그렇듯이 전 회사의 사람들과는 점점 연락이 멀어지고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함께 철야를 하던 차장과 프로젝트를 끝내고 새벽 2시에 소주를 한잔하다가 같이 모텔로 들어갔다. 차장은 때때로 문자를 해대고 본인의 비참한 결혼생활과 부인과의 이혼을 이야기 했다. 나는 또 철야를 하고 끝내야 하는 일들과 시간이 정해진 일들을 마감 짓고 서류를 넘기고, 욕을 먹고 잔소리를 들어가며 한 달 한 달을 넘기고 통장에 잠시 찍힐 월급을 받고 8시까지 출근하고 내 자리가 있다는 것에, 큰 톱니바퀴 중에 하나의 날임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은 어느 출근 아침이었다. 회사까지의 길은 3호선 지하철을 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서 두정거장을 더 가는 경로였는데 2호선 지하철을 갈아타러 가는 지하도보에서 쥐떼들을 발견했다. 목적 없이 자기 앞에 보이는 쥐만 쫒아가는 쥐떼 말이다. 너무나도 징그러운 쥐떼들 때문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쥐떼들은 찍찍 울음소리를 내며 내 앞과 내 뒤에서 나를 쫒고 잠시라도 틈을 보인다면 내 뒤꿈치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쥐떼들은 무채색의 옷을 입고 줄곧 내 주위에서 나를 괴롭혔다.

 

이 쥐떼들은 점점 몸집을 키워 가고 있었고, 곧 그들의 몸집을 사람만큼 키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몸뚱이가 썩어버린 좀비처럼 변해갔다. 지독한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내 목을 뜯어 먹고자 나를 공격해 왔다. 나도 물리면 좀비로 변할지도 모른다. 좀비들은 언제든 달려들어 내 살점을 원하고 있었다.

 

회사에 가기도 싫었고.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도 나랑은 전혀 상관없었다. 무슨 일을 하던 나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욕지거리든 칭찬이든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싶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자고 싶었다. 무얼 먹는 것들도 다 귀찮아지고 점점 현기증이 늘어만 갔다. 체중이 5킬로그램이 빠지고 무언가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가 사직서 양식을 다운받아 양식을 하나하나 채웠다. 그리고 이사님께 대충 얼버무려 사직서를 제출 했다. 당시 내 모습은 지칠 데로 지쳤고 체중은 눈에 보이게 빠져 있어 이유는 충분했다. 퇴사일 전주 토요일까지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하고 마감된 프로젝트를 이메일로 보내고, 다음 주 월요일, 인사를 꾸벅하고 회사를 관두었다.

 

퇴사일 에는 점심때까지 회사에 있다 한낮에 회사를 걸어 나왔다. 햇살은 내 눈을 부시게 하고 온갖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회사 앞에 있던 생선구이 집에서 나는 찌들어 버린 기름 냄새, 늘 가던 순댓국집의 비릿한 누른 고기냄새, 그리고 프린터에서 쏟아내는 지독한 잉크냄새를 멀리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작은 방 냄새를 찾아 지하철 대신 택시를 잡아탔다.

 

일주일 동안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퇴사한 후 2주일이 지나도 나의 눈은 출근시간에 맞춰 떠졌다. 그리고 깨어진 잠은 다시 들지 않았다.

 

2주일이 지나고 내 통장에는 마지막 월급과 퇴직금이 들어 왔다. 이천만원. 나의 삼년과 바꾼 돈이다. 그리고 곧 없어질 허망한 돈들.

 

내가 회사를 관두고 한동안은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얘기도 있었고 다시 회사에 나오라고도 했다. 끔찍했다. 모든 게 허망하고 무기력했다. 거울속의 나는 생기를 잃어 가고 무엇을 다시 시작 할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시계에서 떨어져 나온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고, 다시 그 시계 속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미안하게도 나의 영혼은 너무나 무너지고, 피폐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상 어떠한 것도 나에게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다. 쓸데없이 낄낄대는 텔레비전을 껐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펼쳤으나, 문자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내 머리를 날라 다녔다.

 

그림을 그려보려 화구 점에 가서 물감과 붓과 흰 캔버스를 사왔지만 내 머릿속에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차장님, 부장님의 잔소리가 쏟아지고 노란색을 칠해야 하는지 빨간색을 칠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통장에는 점점 잔고가 줄어들고 있었고 어떻게 할지 몰랐다.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백지라면 이제부터 그려 넣으면 되잖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는 욕망도 없고 무엇이 되고 싶지도 않고 내 존재 자체도 귀찮아졌다. 눈만 껌벅이며 이불을 쓰고 누웠다. 그리고 진통제를 서너 알 삼켰다. 필시 나는 통증을 가지고 있으며 오랫동안 푹 자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디가 원점인가? 내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언제인가? 조잘조잘 떠들던 초등학교 때도 아니고 엄마 품에서 살던 유아기 때도 아닌 것 같다. 돌아간다 하더라도 같은 결과. 비슷한 결과가 이어 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아마도 영영 다시 태어나지 않음이 맞는 듯하다.

 

그 순간 다시 빠르게 시간이 수축해져 갔다. 마치 숨을 가피 쉬듯. 바닥이 보인다. 내 머리가 바닥에 다다르기 일보직전이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냄새가 훅 풍겼다. 그리고 모든 게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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